본문 바로가기
아빠의 노트

아기와 같이 기어다녀 봤더니, 우리 집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by wanny-life 2026. 7. 12.

아기와 같이 기어다녀 봤더니, 우리 집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 는 언제나 목적지였다

 

 

아리랑 놀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리가 보는 우리 집은 내가 보는 집이랑 완전히 다른 거 아닐까?'

우리는 늘 서서 집을 본다.

하지만 아리는 하루 종일 바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나도 바닥에 엎드려
아리와 같은 높이에서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생각보다 우리 집은 엄청 거대한 세상이었다.

거실 바닥에 엎드리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건 크기였다.

평소에는 익숙했던 거실이
아리의 눈높이에서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냉장고는 거대한 벽처럼 보였고,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고,

문 하나도 커다란 입구처럼 느껴졌다.

사진을 찍으며 둘러보다 보니
'아리는 매일 이런 세상을 탐험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리는 늘 엄마를 찾았다.

그렇게 둘이 기어다니며 놀고 있는데
촛농이가 거실로 나왔다.

그러자 아리는 바로 방향을 바꿨다.

멀리 있는 장난감보다

엄마를 따라가는 게 먼저였다.

작은 몸으로 복도를 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괜히 웃음이 났다.

 

 

화장실도 함께 따라간다.

촛농이가 양치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리도 망설임 없이 따라간다.

문턱 앞에 멈춰 엄마를 올려다보고,

엄마가 움직이면 또 따라간다.

우리에게는 그냥 화장실이지만,

아리에게는 '엄마가 있는 곳'이었다.

 

 

빨래를 널어도 같이 간다.

이번에는 안방.

촛농이가 건조대에 빨래를 널기 시작하자

아리도 또 졸졸 따라왔다.

건조대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빨래가 천장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는 늘 보던 풍경인데,

아리에게는 매일 새로운 놀이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식탁 밑은 아리만 아는 지름길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여기였다.

촛농이가 부엌으로 가자

아리는 고민도 하지 않고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

나는 당연히 따라가려다가...

못 들어갔다.

결국 식탁을 빙 돌아가야 했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아리에게는 식탁 밑이 가장 빠른 길이었지만,

아빠에게는 절대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같은 집인데도
우리가 다니는 길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엄마가 있는 곳이 가장 재미있는 곳

부엌에 도착한 뒤에도

아리는 한참 동안 엄마를 바라봤다.

설거지를 해도,

물을 마셔도,

잠깐 움직이기만 해도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나보다

엄마를 바라보는 게 훨씬 더 재미있어 보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장난감보다

엄마와 아빠가 아기에게는 가장 큰 관심거리일 테니까.

 

 

아리 덕분에 처음 보는 집을 만났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하루 동안 아리를 따라 기어다니다 보니

1년 넘게 살던 집이 처음 보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리의 눈에는

모든 것이 크고,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탐험이었다.

나는 늘 서서 집을 바라봤고,

아리는 바닥에서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마무리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지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한 번 바라보는 것도

좋은 경험인 것 같다.

딱 하루,

아리와 함께 바닥을 기어다녀 봤을 뿐인데

우리 집이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날 나는 아리를 따라 기어다닌 것이 아니라,

잠시 아리의 세상을 빌려본 것 같았다.

우리 집은 그대로였지만,

아리의 눈높이에서 본 집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